지성업 목사는...

감리교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과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교회인 내판벧엘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며 1993년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 California)에서 목회상담학(Pastoral Care & Counseling)을 전공하였으며, LA의 올림픽 감리교회(KMC)와 밸리한인연합감리교회(UMC)에서 10년간 한인 이민자들을 섬기다 2004년 1월부터 대전의 산성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NGO ‘월드휴먼브리지(World Human Bridge)'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2∼30대 젊은 사역자를 돕는 ‘웨슬리 펠로우(Wesley Fellow)’를 통해 교회와 사회를 섬기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대전의 산성교회를 더 큰 교회로 확장하는 것보다 이 땅에 필요한 곳에 아름다운 교회를 하나 더 세우는 것이 가치 있음을 믿으며 2018년 4월부터 세종시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멀티캠퍼스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지성업 목사 가정은...

5월의 가정입니다. 오월의 남자인 목사님이 오월의 여인인 김정빈 사모님을 만나 오월에 결혼하여 오월에 태어난 두 자녀, 딸 혜름과 아들 한솔을 두고 있습니다.


프로필

-연세대학교 신학과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전공)

-산성교회 담임목사

  (대전&세종캠퍼스)


저서

회수권을 나누어 주던 내 친구, 지성업 목사...

딱딱한 학술 논문만 쓰다가 내 친구 지성업 목사를 소개하는 글을 쓰자니, 문득 감회가 새롭습니다. 친구로서 보아왔던 지성업 목사를 소개하자면, 당연히 그것은 제 몫입니다. 그와 나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재학 중일 때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였고, 늘 함께 붙어 다니던 단짝이었습니다. 군대도 같은 시기에 가서 논산 훈련소 교회당에서 우연히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제대하고 연세대로 복학했을 때, 당시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제게 전세방을 함께 나누어 쓸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지 목사였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3-4학년 과정을 마칠 수 있었지요. 지 목사와 함께 살면서, 신탄진에서 올라오던 충청도 김치의 맛에 푹 빠졌습니다. 원래 부산 출신인 저는 김치를 짜게 먹었는데, 지목사와 함께 자취를 하면서 "싱거운" 충청도 김치 맛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제가 먼저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시골에서 목회하던 지성업 목사를 미국으로 오라고 설득한 사람도 저였고, 미국 생활 초창기에 함께 살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후 지 목사는 로스앤젤레스가 있는 미국 서부로 가고, 저는 동부지역에 남아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각각 공부를 마친 다음, 지목사와 나는 같은 해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모교인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으로, 그리고 지성업 목사는 지금의 산성교회로 부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5년 동안 지 목사와 저는 늘 함께 해 온 것 같습니다. 어려울 때 함께 그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제 인생은 늘 즐겁고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삶이 신날 수 있는 것은 멋진 친구가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제 처에게 "결혼해 주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제 처는 오히려 정반대로 이야기를 하고 다닙니다. 자기가 무지 손해를 보면서 결혼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손해 보는 일을 했냐고 다그치니까, "같이 다니는 친구가 너무 좋아서" 결혼했다고 합디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가 너무 사람이 좋아보여서 제가 그래도 쓸 만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성업 목사를 친구로 둔 덕분에, 장가도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25년을 함께 지내오면서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지성업 목사와 저는 단 한 번도 어떤 일로 다투어 본 적이 없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제가 누구와 한 번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은 그 기적이 지성업 목사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언제나 상대편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늘 넉넉한 마음으로 상대편을 존중할 줄 아는 지성업 목사로부터 저는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학창시절,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지 목사는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회수권"을 내고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회수권은 학생회관 구내매점에서 판매를 했는데, 매달 한 달분을 한꺼번에 사곤 했습니다. 저는 회수권 살 돈도 없었습니다. 지성업 목사는 자기가 타고 다닐 한 달분 회수권을 한꺼번에 사서, 열장 단위로 프린트되어 있던 회수권 뭉치를 제게 반을 뚝 잘라 주곤 했습니다. 그것도 정확하게 반씩 나누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어림잡아 뚝 떼어서 주곤 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를 향해 한 번, 씩- 웃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미래가 궁금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천사와 같은 지성업 목사를 어떻게 들어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를 이곳까지 부르셨는지, 어떤 미래의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 지성업 목사를 부르셨는지 저는 정말 궁금할 뿐입니다.


- 김상근 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