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미국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가전제품 하나를 새것으로 샀습니다. 얼마 후 작동이 잘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량품은 교환해 준다는 광고를 보고 산 것이었기에 가게로 찾아가 새것과 교환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원이 제가 물건을 산 영수증의 날짜와 달력의 날짜를 비교해 보더니, 교환 만기일이 이틀 지났다며 차갑게 거절하였습니다. 미국은 웬만하면 잘 바꾸어 주었기에 거절당한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기분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점원은 정해진 원칙을 따랐을 뿐입니다. 문제가 생기자마자 즉시 갖고 오지 않은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보통 성숙한 사회는 원칙이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같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 원칙 안에서 만들어진 규범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에 반해 성숙하지 못한 사회는 원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은 상황에 따라서 변형되고, 변칙이 존재하는 가운데 구성원들은 불편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도 보통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원칙을 중시하는 성숙한 사회로 탈바꿈해 나갑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은 그런 면에서 성숙하지 못한 면이 많았었는데 요즘은 정말 성숙한 사회가 되었구나 싶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원칙이 없던 미성숙한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경직성입니다. 원칙 안에서 자유로운 유동성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다들 원칙에만 얽매여 있습니다. 그리고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그 사회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에 비해 좀 더 성숙한 사회는 모두가 원칙을 지키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에도 관용하거나 인내할 줄도 압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서야 하는 것은 원칙입니다. 미성숙한 사회는 줄을 서지 않고 있다가 버스가 오면 서로 먼저 타려고 아귀다툼을 하는데 반하여 성숙한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가 버스가 오면 다들 편안하게 순서대로 버스에 오릅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새치기를 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누구 할 것 없이 그에게 분노합니다. 그러고는 결국 그를 끌어내어서 가장 뒤로 보내버리지요. 그런데 좀 더 성숙한 사회의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누군가가 새치기를 하면 "뭔가 바쁜 일이 있나 보지..."하며 넘어가 줍니다. 누군가 우체국에서 급하게 줄을 가로질러 창구에 갔을 때 창구 직원이 기다리던 사람의 차례라고 알려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그때 뒤에 있던 사람이 "괜찮아요. 그냥 그 사람 먼저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좀 더 성숙한 사회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원칙과 관용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 좀 더 성숙한 사회는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교회는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공동체이기 때문에, 특별히 선한 사명을 공유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히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니까..." 하면서 규칙을 무시하는 경우는 정말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간혹 규칙이 어겨지는 경우를 볼 때에도 교회는 치유 공동체이므로 "뭔가 사정이 있겠지..., 잘 몰라서 그러겠지..." 하는 여유를 보여주는 그런 사랑과 관용이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연말에는 여러모로 더욱 분주해집니다. 거기다가 코로나의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속에 짜증과 불쾌함이 더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성숙한 공동체로서 서로를 배려하며 이해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에베소서 4:25-32, 새번역)
생명이 회복되는 공동체 산성교회 대전&세종을 꿈꾸며
여러분을 섬기는 지성업 목사 드림
오래전 미국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가전제품 하나를 새것으로 샀습니다. 얼마 후 작동이 잘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량품은 교환해 준다는 광고를 보고 산 것이었기에 가게로 찾아가 새것과 교환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원이 제가 물건을 산 영수증의 날짜와 달력의 날짜를 비교해 보더니, 교환 만기일이 이틀 지났다며 차갑게 거절하였습니다. 미국은 웬만하면 잘 바꾸어 주었기에 거절당한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기분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점원은 정해진 원칙을 따랐을 뿐입니다. 문제가 생기자마자 즉시 갖고 오지 않은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보통 성숙한 사회는 원칙이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같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 원칙 안에서 만들어진 규범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에 반해 성숙하지 못한 사회는 원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은 상황에 따라서 변형되고, 변칙이 존재하는 가운데 구성원들은 불편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도 보통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원칙을 중시하는 성숙한 사회로 탈바꿈해 나갑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은 그런 면에서 성숙하지 못한 면이 많았었는데 요즘은 정말 성숙한 사회가 되었구나 싶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원칙이 없던 미성숙한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경직성입니다. 원칙 안에서 자유로운 유동성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다들 원칙에만 얽매여 있습니다. 그리고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그 사회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에 비해 좀 더 성숙한 사회는 모두가 원칙을 지키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에도 관용하거나 인내할 줄도 압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서야 하는 것은 원칙입니다. 미성숙한 사회는 줄을 서지 않고 있다가 버스가 오면 서로 먼저 타려고 아귀다툼을 하는데 반하여 성숙한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가 버스가 오면 다들 편안하게 순서대로 버스에 오릅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새치기를 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누구 할 것 없이 그에게 분노합니다. 그러고는 결국 그를 끌어내어서 가장 뒤로 보내버리지요. 그런데 좀 더 성숙한 사회의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누군가가 새치기를 하면 "뭔가 바쁜 일이 있나 보지..."하며 넘어가 줍니다. 누군가 우체국에서 급하게 줄을 가로질러 창구에 갔을 때 창구 직원이 기다리던 사람의 차례라고 알려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그때 뒤에 있던 사람이 "괜찮아요. 그냥 그 사람 먼저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좀 더 성숙한 사회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원칙과 관용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 좀 더 성숙한 사회는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교회는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공동체이기 때문에, 특별히 선한 사명을 공유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히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니까..." 하면서 규칙을 무시하는 경우는 정말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간혹 규칙이 어겨지는 경우를 볼 때에도 교회는 치유 공동체이므로 "뭔가 사정이 있겠지..., 잘 몰라서 그러겠지..." 하는 여유를 보여주는 그런 사랑과 관용이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연말에는 여러모로 더욱 분주해집니다. 거기다가 코로나의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속에 짜증과 불쾌함이 더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성숙한 공동체로서 서로를 배려하며 이해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에베소서 4:25-32, 새번역)
생명이 회복되는 공동체 산성교회 대전&세종을 꿈꾸며
여러분을 섬기는 지성업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