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7일 우리는 위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관리자
2019-10-26
조회수 173

   성경 속 최초의 전도자 모든 사람은 대부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일들을 하려고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인간의 죄된 본성으로 인해 나쁜 마음을 먹고 무엇을 하려고 할 때도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 일을 하려고 할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생명에 위험을 느낄 때 우리는 그가 구출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구출될 때 매우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같은 인간으로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많은 분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삶을 살지만 안타까운 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실수를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위로입니다. 좋은 의도와 마음으로 위로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핸드북 <Handbook for Those Who Grieve>” 이란 책에 보면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나와 있습니다. 도움이 될 듯싶어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느낄지 압니다”

“정신 바짝 차리게. 자네가 이렇게 심하게 받아들일 줄 상상도 못 했어.”

“지금은 무너질 때가 아니야.”

“아이들을 생각해서 강해져야 해.”

“침착해. 다 괜찮아질 거야.”

“자, 자, 이제 눈물은 그만!”

“왜 자꾸만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데. 그래 봐야 상황이 나빠질 뿐이야.”

“왜 내게 연락하지 않았어?”

“모든 것은 위장된 축복이야.”

“나는 그 병원 [혹은 의사, 혹은 무엇이든]을 믿지 않았어.”

“너는 젊어. 다시 결혼하면 되잖아.”

“계속 살아가야만 해.”

“자네가 겪고 있는 고통이 어떤지 다 알아.”

“그래도 나보다는 나아. 내 어머니는 더 젊었을 때 돌아가셨어.”

“이젠 다 끝났으니 마음 편히 가져. 그동안 고생했어.”

“차라리 이편이 나아.”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셔서 빨리 데려가셨나 봐.”

“강해져야 해. 가정을 책임질 사람이 자네밖에 없잖아.”


   이 말들을 보고 가책을 느끼는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대부분 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위로하기 위해 꺼낸 말이 오히려 비수가 되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예에 처하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는 어색해서 입을 엽니다. 그럴 경우, 끝에 가서는 실언이 됩니다.

   다른 예도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한 확신이 강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무슨 일에나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여,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만나서 자기 믿음에 따라 훈계를 하거나 조언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줍니다.

   어느 교우께 들은 말입니다. 그분의 모친께서 아흔이 넘어 돌아가셨는데, 누군가가 “아흔이 넘어 돌아가셨으니, 이건 호상이야. 슬퍼할 거 없어”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것도 듣기에 좋지 않더랍니다. 그러니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눈빛으로 혹은 표정으로 말하면 충분합니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특별히 진리인 것 같습니다.


생명이 회복되는 공동체 산성교회 대전&세종을 꿈꾸며
여러분을 섬기는 지성업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