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9일 “교육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관리자
2020-02-08
조회수 192

   저희 딸을 처음으로 대학교에 데려다주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놓고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대학 캠퍼스가 위험한 때도 없습니다. 영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증오심이 캠퍼스에 팽배해 있습니다. 위험한 사상들이 젊은이들의 영혼을 지배하기위해 각축을 벌입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정도를 넘어있습니다. 윤리적인 무질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요즘 캠퍼스에서는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이 정신병자로 취급 당하고 정상적으로 살려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아이를 마치 밀림 속에 버려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그런 불안감을 떨치고 든든히 믿고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또한 아이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믿어주는’ 것이죠. 이상하게도 사람은 믿어주고 기다리면 믿어 주는 모습대로 크는 성향이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아이들을 저희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잡아끌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희라고 아이들을 최고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체면과 위신에 대한 생각이 저희에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하다가는 아이들을 망가뜨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로, 저희는 두 아이를 사랑하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비록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에서 내세울 것이 하나 없어도 누구 앞에서든 자랑스럽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 후로 아이들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아이들과 간단한 외식을 하면서 마시는 커피가 너무 맛있었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아름답고, 가로수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그 가로수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럴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리는데 때로는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큰 행복이나 큰 불행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우리의 인생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작은 행복과 작은 불행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는 이 작은 행복과 작은 불행으로 결정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우리 주위에 흩어져 있는 그런 시간을 즐기며 행복해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것을 불평하느라 보냅니다. 그런데 내 삶에 있는 작은 것을 불평하기 시작하면 푸른 하늘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헤어스타일을 망치는 짜증스러운 것으로 바뀌고 맙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작은 행복들을 낭비하면서 살아갑니다. 아무리 염려스러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행복입니다.


   아이를 믿어 줄 힘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아이를 사랑하시되,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분께서 돌보시리라고 믿고 의지하는 믿음 말입니다. 내가 닦달하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아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다만 아이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자라도록 돕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이를 믿어줄 수 있고 그 아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믿음 안에서 든든히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생명이 회복되는 공동체 산성교회 대전&세종을 꿈꾸며
여러분을 섬기는 지성업 목사 드림